일기2012. 10. 5. 08:47

이 겉잡을 수 없을만큼 늘어버렸다.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에 걸맞게 늦게 자는 버릇이 꽤나 깊이 박혔다.

4월부터 실습과 병행하며 써내려간 논문을 여름방학까지 질질 끌다 9월에 드디어 제출하고 디펜스도 끝. 

개강까지는 당분간 백조나 다름없어 이렇게 잠을 마음껏 잘 수 있는 셈. 사실 이런건 순간을 즐겨야 하는 법인데 나는 왜 이렇게나 불안한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힘들었다. 몸과 마음 모두 사실 너무 지친 상태였다. 

논문이라곤 내 인생에서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상태였고, 게다가 외국어로 논문을 쓴다는게 나에겐 엄청난 일이었던지라 부담도 꽤나 컸고...  실제로 내 능력에서 해낼 수 있는 한계가 느껴졌고 또 뻔하게 보였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게 나의 의문이었다.


사실 4월부터 파스칼 장학생(프랑스 정부 장학생) 준비도 같이 하고 있었고 실습 또한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건 쉽지 않았지만 다 주변 사람들 덕택에 실습도, 실습 레포트도, 꿈에 그리던 장학생도 되었고, 아주 좋은 점수로 논문 디펜스를 끝냈다. 

장학생 인터뷰 때문에 여름방학때 한국에 다녀왔다. 너무나 더워서 집에만 박혀 논문을 끄적끄적. 괴로웠다. 게다가 끝내주게 더웠던 탓이라 식욕을 잃어 하루 한 끼로 배를 채웠던 듯하다. 

이렇듯 나는 정말 아무 숨김없이 6개월이라는 시간이, 아니 석사 1년 동안의 시간이 괴로웠었다고 토로를 해낼 수 있을 만큼의 그러한 긴 이야기가 있지만 이렇게 쉬라고 내어준 시간에 나는 편하게 쉴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논문이 끝나면 이거해야지. 저거해야지. 그것도 한번 해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리스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어느 일요일. 도무지 답답하여 동네 미술관이나 갈까 하여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내 중심에서 내려 걷다가 원래 가려고 했던 그 미술관이 아닌 일년 전 우연히 걷던 그 길로 나는 걷고 있었다. 이탈리아 지구였는데 여긴 볼 때마다 신기했다. 일요일은 어느 곳이건 조용하다. 마피아 생각에 약간은 섬뜩했지만 나는 좋았다. 그냥 걷고 있다는 사실에.




결국 다다른 곳은 고고학 박물관. 이게 약간 헛갈리게 되어 있는지, 아니면 길치인 나의 문제인지. 나는 결국 고고학 박물관이 어딘지 몰라 계속 올라가다가 마침내 바스티유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도중에 내가 지나쳤다는걸 깨닫고는 다시 내려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번 올라가보고 싶어서 계속 걸었다. 물이 없었다는게 약간 날 힘들게 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바스티유 정상까지 올라가 나는 시원한 탄산수를 들이키며 정상에 놓여져 있는 벤치에 앉아 전경을 내려다 보았다. 



여기서 꽤나 쉬었던 것 같다. 다이어리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웠던 걸 보면. 사실 이 풍경을 보고서 한 가지가 내 머리를 스쳤다. 

< 빨간 지붕의 도시. 피렌체 > 이번에야 말로 피렌체에 갈 때라고 생각했다. 사실 작년 이 맘때 만 26세가 되기 전 인터레일을 이용해 이탈리아를 돌고 오려고 생각했었는데 파리에 가야 할 일이 생겨 파리에서 내 생일을 보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나에게서 약간은 멀어진걸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이 광경을 보니 피렌체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내 모든 교과서에는 피렌체가 내 이름이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피렌체야?"  (쌩긋)


나는 이날 밤, 기차에서 숙박 예약까지 모든걸 끝마쳤다는 이야기. -_-v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르노블이 좋은 이유는 알프스 산이 너무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이 들기 때문이랄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J'AIME GRENOBLE !


Posted by Florencec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