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20.09.13 그냥 잡담
  2. 2015.09.16 비, 생각
  3. 2012.10.05 짧은 나들이
  4. 2012.05.24 La vie en rose? 장미빛 인생?
  5. 2012.03.06 Rompre les préjugés
  6. 2012.01.01 안녕 2011, 안녕 2012 2
  7. 2011.10.13 마음의 양식을 쌓자.
  8. 2011.10.09 다이어리의 주말칸은 일기를 쓸만한 공간이 없다.
  9. 2011.09.18 분야의 전문가
  10. 2011.09.17 지금
일기2020. 9. 13. 05:43

블로그에 글을 안 쓴지 5년이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있다.

 

현재 SNS도 본의 아니게 안하게 된지도 어언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잘 지내고 있으리라.

 

나도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서 여행을 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얼마 전 노트북을 바꿨다.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랩탑3이라고 아실려나. 

적응 중인데 나름 괜찮다. 화면도 큰 걸로 사니 시원시원해서 좋다.

바꾸기 전에는 버퍼링이 너무 심해서 유튜브를 볼 엄두를 못 냈었는데,

역시 안락한 환경에서는 안락함을 계속 찾게 되는구나 생각이 든다. 

집에 티비도 없으니 뭔가 신세계를 맛보는 기분. 

한국 예능이 참 재밌다는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노트북을 바꾸고 Zoom을 사용할 일이 늘어나더라. 

바꾸길 잘했다.

 

핸드폰은 올해로 9년째 아이폰 4S를 쓰고 있는데 업데이트가 이제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주요 어플의 업데이트가 불가능하여... 본의 아니게 인스타그램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있다.

카톡은 PC가 되어서 천만 다행이다.

당분간은 전화, 문자, 알람, 사전만 필요하니 새 핸드폰은 급하지 않다.

아마 예상컨대 올해 말 정도에 새로 장만하지 않을까.

 

그동안 성격이 변한 것 같다. 아니 변했다. 

예전엔 소심했다면 뭔가 쿨해진 느낌. 

예전엔 내가 못한 것에 대하여 자책을 많이 했는데 이젠 그렇구나 넘겨버리고 내가 잘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뭐랄까.

내가 누구인지 하나씩 깨닫게 되면서 나의 한계적 한계와 발전가능한 한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아직도 의문이 드는 점들이 많지만, 그 또한 서서히 알게 되겠지. 

그래서 조급함이 많이 사라졌다. 

변한 내가 마음에 든다. 

 

한국을 안(못) 간지 어언 3년이 넘었다.

2017년 여름이 마지막이었으니.

 

오늘은 프랑스의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가 만명을 넘었다. 

굉장히 암울하다. 

천명대, 2천명대...... 이어져서 8천, 9천명이더니 기어코 만명을 넘겨버렸다. 

대단하다 프랑스. 

어제는 총리의 짤막한 대국민 연설이 있었는데, 

이번엔 경고를 하는 것이고, 

왠지 빠른 시일 안에 마크롱이 직접 하지 않을까. 

재봉쇄 한다고.

 

아.......

 

오늘은 마음이 그냥 그렇다. 

말 할 사람도, 있다고 해도 굳이 이런 이야기는 재미없으니 하기가 뭣하다.

그래서 블로그가 있나보다.

좋군.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5. 9. 16. 18:58

모든게 절망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에서의 할 수 있는 일.

커피를 마시며 내 자신을 위한 여유를 주는 일.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옷이 흠뻑 젖어 게다가 우산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정도의 바람이 불 때, 화가 내 몸을 덮어버리고 나는 어디로, 내가 가고자한 그 곳으로 가도 될까 망설인다.

별 것 아닌데.

한숨을 들이쉬고 또 애써 웃어는 본다. 커피를 건네주는 상대방에 대한 친절한 인사.


생각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건 나의 것이 아닌 것 같단 불안감이 느껴진다. 나는 혹시 이 비와 함께 내려진게 아닐까.

또 다시 말라버리면 어떡하지.

생각하는게 버겁다.

보이지 않는 것에도 무게를 잴 수 있다면,

겁이 날 것 같다.


최선을 다 하는 삶.

내가 말라버릴 때까지 달려서 그 곳에 다다르면 나는 그 땐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강할 필요가 있을까.

언제쯤이면 원하는 것들을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무도. 아무것도.


생각은 어디에서 내려질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생각에도 차별이 있는가?

생각은 문자로 적혀질 수 있는 거라면 생각에 대한 답은 이미 적혀진 것일까.

변하지 않는 것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의 힘일까.

힘이란건 어떻게 정의 내려질 수 있을까.


내리는 비와 내려진 커피는 강하다.

쓸데없는 이런 생각마저 생각이라 정의내릴 수 있는 거라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일테다.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2. 10. 5. 08:47

이 겉잡을 수 없을만큼 늘어버렸다.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에 걸맞게 늦게 자는 버릇이 꽤나 깊이 박혔다.

4월부터 실습과 병행하며 써내려간 논문을 여름방학까지 질질 끌다 9월에 드디어 제출하고 디펜스도 끝. 

개강까지는 당분간 백조나 다름없어 이렇게 잠을 마음껏 잘 수 있는 셈. 사실 이런건 순간을 즐겨야 하는 법인데 나는 왜 이렇게나 불안한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힘들었다. 몸과 마음 모두 사실 너무 지친 상태였다. 

논문이라곤 내 인생에서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상태였고, 게다가 외국어로 논문을 쓴다는게 나에겐 엄청난 일이었던지라 부담도 꽤나 컸고...  실제로 내 능력에서 해낼 수 있는 한계가 느껴졌고 또 뻔하게 보였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게 나의 의문이었다.


사실 4월부터 파스칼 장학생(프랑스 정부 장학생) 준비도 같이 하고 있었고 실습 또한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건 쉽지 않았지만 다 주변 사람들 덕택에 실습도, 실습 레포트도, 꿈에 그리던 장학생도 되었고, 아주 좋은 점수로 논문 디펜스를 끝냈다. 

장학생 인터뷰 때문에 여름방학때 한국에 다녀왔다. 너무나 더워서 집에만 박혀 논문을 끄적끄적. 괴로웠다. 게다가 끝내주게 더웠던 탓이라 식욕을 잃어 하루 한 끼로 배를 채웠던 듯하다. 

이렇듯 나는 정말 아무 숨김없이 6개월이라는 시간이, 아니 석사 1년 동안의 시간이 괴로웠었다고 토로를 해낼 수 있을 만큼의 그러한 긴 이야기가 있지만 이렇게 쉬라고 내어준 시간에 나는 편하게 쉴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논문이 끝나면 이거해야지. 저거해야지. 그것도 한번 해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리스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어느 일요일. 도무지 답답하여 동네 미술관이나 갈까 하여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내 중심에서 내려 걷다가 원래 가려고 했던 그 미술관이 아닌 일년 전 우연히 걷던 그 길로 나는 걷고 있었다. 이탈리아 지구였는데 여긴 볼 때마다 신기했다. 일요일은 어느 곳이건 조용하다. 마피아 생각에 약간은 섬뜩했지만 나는 좋았다. 그냥 걷고 있다는 사실에.




결국 다다른 곳은 고고학 박물관. 이게 약간 헛갈리게 되어 있는지, 아니면 길치인 나의 문제인지. 나는 결국 고고학 박물관이 어딘지 몰라 계속 올라가다가 마침내 바스티유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도중에 내가 지나쳤다는걸 깨닫고는 다시 내려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번 올라가보고 싶어서 계속 걸었다. 물이 없었다는게 약간 날 힘들게 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바스티유 정상까지 올라가 나는 시원한 탄산수를 들이키며 정상에 놓여져 있는 벤치에 앉아 전경을 내려다 보았다. 



여기서 꽤나 쉬었던 것 같다. 다이어리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웠던 걸 보면. 사실 이 풍경을 보고서 한 가지가 내 머리를 스쳤다. 

< 빨간 지붕의 도시. 피렌체 > 이번에야 말로 피렌체에 갈 때라고 생각했다. 사실 작년 이 맘때 만 26세가 되기 전 인터레일을 이용해 이탈리아를 돌고 오려고 생각했었는데 파리에 가야 할 일이 생겨 파리에서 내 생일을 보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나에게서 약간은 멀어진걸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이 광경을 보니 피렌체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내 모든 교과서에는 피렌체가 내 이름이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피렌체야?"  (쌩긋)


나는 이날 밤, 기차에서 숙박 예약까지 모든걸 끝마쳤다는 이야기. -_-v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르노블이 좋은 이유는 알프스 산이 너무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이 들기 때문이랄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J'AIME GRENOBLE !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2. 5. 24. 04:34


오늘은 CCAS (Centre Communal d'Action Sociale-  시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관) 에서의 공식적인 마지막 실습날이었다. 총 6주간 실습이었는데 프랑스 5월은 카톨릭 공휴일이 많이 끼어있는 바람에 횟수로 따지면 6주 넘게 실습을 했다. 이번주 금요일에 봄 맞이 어르신 식사의 좀 큰 행사가 있어서 하루종일 도와주러 가면 그로써 나의 석사과정 프랑스에서의 처음 행하는 실습이 모조리 끝나는 것이다. 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시작하기 전만 해도 잘 못하면 어쩌지 노심초사했었는데 다행히도 정말 좋은 상사님을 만나서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 많은 걸 배웠고 또 얻어간다. 

오늘은 실습이 끝나고 Monica 생일 축하 메시지 녹화 약속이 있어서 녹화 담당하는 Sasha를 바로 만났다. 참고로 둘은 연인사이이며 Monica가 얼마 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4일 후에 Sacha도 미국으로 돌아간다. 떠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남겨진 사람의 그 허전한 마음을 말이다. 어쨌거나 다행히 NG 한 번만에 무사히 자연스러운(?) 생일 축하 메세지를 남겼다. 내가 Monica라면 엄청 감동먹을만큼의 멘트를 남기며... 편지나 메세지의 참 좋은 점은 상대방이 눈 앞에 없을 때 오글오글한 표현을 마음껏 분출(?)해 낼 수 있으며 그걸 받는 사람 또한 그러한 메세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크나큰 감동을 받게 되며 그 이후로 상대방을 더 각별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라고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둘은 연인이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Sacha는 나에게 "La vie est belle(인생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더라. 마침 햇볕이 없던 바람불고 약간 으슬으슬한 흐린 날이었다. 사랑은 모든걸 예쁘게 보이게 한다고 웃으며 말했더니 이 아이는 거부를 하며 (쑥쓰러웠겠지!!!)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라며 그 말을 계속 반복했다. 어느 순간 구름 사이로 햇볕이 쏟아졌다. 내가 덧붙였다. "La vie est belle avec le soleil(삶은 해가 있을 때 아름답지.) 그러자 그가 응답했다. 

"Le soleil est toujours là(해는 항상 거기 있어)." 난 아차 싶었다. 내가 말했다. "Oui, t'as raison. Des nuages le cachent et tout. Je vais predre la note dans mon journal. (응 네 말이 맞아. 단지 구름이 해를 가릴 뿐이지! 오늘 일기장에 적겠어.)"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길,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하여 나를 채찍하는 대신에 나는 그걸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고 이제 그 생각은 나의 것이라고, 이 생각을 또 나의 친구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장미덩쿨을 걸어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 예쁜 꽃의 사진을 담았다. 사진을 찍느라 자리에 머무는 동안, 난 평소 지나치면서 충분히 맡을 수 있었을 아주 향기로운 장미향을 올해 처음으로 맡았고 그 향기로운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걸어왔다. 


그래, 모든건 감사한 일 투성이야. 내가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선 가장 먼저 감사한거고 내가 현재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거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나의 부모님께 감사한거고, 날 여태 잘 지탱해준 나에게도 감사한거야. 날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한거고 내 기억을 메울 수 있게 만들어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거지.

  

그러고는 나는 소리쳤다.

"La vie est belle ! (인생은 아름다워!)"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2. 3. 6. 09:57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극클럽이다. 이 클럽은 은퇴클럽 어르신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마다 연극 활동을 하는 것인데ㅡ 전공인 우리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반면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것은 무언가 스페셜한가보다. 
프랑스에 온 후로 두 번째 신문에 게재되었다. 첫번째는 프랑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외국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기사였고, 이번엔 좀 더 프랑스에 적응한 유학생의 활동을 보여주게 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는 논문에 매달려있다. 한국말로 논문 쓰는것도 힘든데 프랑스어로 적으려니 나는 도무지 진도를 뺄 수가 없다. 하나하나 문법에 신경써야하고, 맞는지 맞지않는지 수도 없이 이렇게 고쳐봤다가 저렇게 고쳐봤다가. 쓰면서도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왜 언어란 이토록 다르게 표현되어야 하는것인가에 대하여 말이다. 

나는 오늘 꽤나 오랜만에 프랑스에 왜 왔는가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내가 나에게. 
그리고 이런 물음을 일깨워준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리다. (외국생활에서는 나이는 중요치않지만 내가 한국인이긴 한국인인가보다.)
처음 만났지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꽉 차있는걸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자신에 대해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친구였다.
요새 연극활동을 통해서 내 몸으로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에, 이젠 생각이나 언어로써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었던 사람을 알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그리고 내심 한편으론 현재 그가 가진 재능이 샘이 났다.

언젠가부터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그렇게 설득하던 나였는데 꽤나 오랜만에 부러운 감정을 느끼게 한 친구였다.
오늘밤은 이런저런 생각에 논문이고 뭐고 다 내버려두었고 내 몸을 흔들고 내 머리를 흔드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아끼는 습관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의 모든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 그것만 잘해도 세심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난 외국에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잘 만날 수 없는 다양하고 멋있는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것. 바로 오늘처럼.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한다고 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왜 난 이 좋은 환경을 놔두고 이곳에서 자꾸만 내 안으로 파고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서서히 고칠 필요가 있다.

아직 나는 너무도 고칠 점들이 많다.  이 점들을 하나 둘 씩 고쳐가면 좀 더 성장한 내가 되기를 꿈꾸며. 
오늘은 마지막 남은 파울로코엘료의 순례자를 마저 읽고 그냥 잠들어야겠다.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2. 1. 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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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제 2012년. 반대편 여긴 아직도 2011년.

난 과거를 길게 살고 있는 것인가. 그대들은 미래를 먼저 달리고 있는 것인가.

좀 더 나은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축제에 내가 등장했다.

오늘은 게으름에 허덕이고 있는 나 자신을 질책했고, 또 한편으론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와준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목적지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작년에 내가 감수 할 수 있을거라고 굳게 믿었던 이 시간도 곧 지나가겠지. 불평은 덮어버리자. 모든건 내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생각대로 움직이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2012년도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언제나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활짝 웃으며 나가자.

민애, 파이팅이다.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1. 10. 13. 06:35
이렇게 좋은 가을 날.
도서관에서 열을 다하여 얼굴 파묻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밖에 나오면 어느새 으슬으슬 가을바람이 내 몸을, 내 얼굴을 그렇게 휘감고 쓰으쓱 지나간다.
저녁의 가을바람은 내일 당장 겨울로 변할 것 같은 그런 냉기를 품고 있다.

이런 가을에 걸맞게 여러가지 도서를 끄집어내어 시간이 날 때 마다 읽도록 하자.
변덕이 심한 가을처럼 여러가지 장르의 책을 두루두루 읽는것도 참 좋겠다.

가을 여자가 한 번 되어봐야지.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1. 10. 9. 08:37
벌칙으로 와인 1/3을 마셨다.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뭐 사람 일이란게 생각대로 되는건 아니니까.

오늘 점심땐 프랑스 한 친구가 한국인들과 바베큐 파티를 한다고 하여 같이 가기로 했지만 날씨가 받쳐주질 않아 내가 트람을 타자마자 취소 연락을 받았던 관계로 나에게 제안했던 친구를 그냥 따로 만나서 인도식당의 뷔페를 배불리 먹고 이리저리 Fnac가서 시간 때우고 Victor Hugo에서 한국 친구 한 명이 합세하고, Grand Place에서 프랑스 친구 한 명, 키르키즈탄 친구 한 명, 러시아 친구 한 명. 이렇게 여섯이 모였다. 난 개인적으로 이 다섯명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 다섯명끼리는 예전부터 쭈욱 알던 사이) 이번에 두번 째 보는 사이라 아직까진 서먹서먹한? 그리고 Tours에서 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사이를 유지해서 그런지 여기서 막상 만나는 사람들과 선뜻 친해지기, 마음을 열기가 굉장히 어려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원래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지만 왠지 모를 혼자만의 거부감으로 인하여, 그리고 피곤하기도 했고 해서 내 방에 가서 쉰다고 말했지만 그건 또 아닌것 같아서 좀 쉬다가 나중에 합세를 했고, 맛나게 라면과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디저트로 케잌을 맛나게 먹었고, 카드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다른 방 두드려서 비주를 한다거나, 뭐 그런 게임을 하던 중에 윗 층에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한 팀을 벌칙을 행하면서 합세하여 같이 놀이를 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돌아가면서 벌칙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벌칙은 사람들 질문에 oui(yes)이라고 하지 않는것. 근데 또 강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예스라고 말했던 난, 와인 1/3을 벌컥벌컥 마시게 되었다.
 
나로선 이렇게 한 무리에 끼어서 논다는게 굉장히 오랜만이고 하니 낯선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서 사람들 얘기만 계속 듣다가 웃다가, 자정이 이미 넘은 상태라 기숙사에 살지 않는 세 명의 친구들을 함께 배웅하고 내 방에 앉았는데 무언가 몰입하지 않으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고, 약간 취한 이 상태의 기분을 제어할 수가 없을것만 같아서 다이어리를 열었는데 내 다이어리는 주말칸은 굉장히 작아서 일기쓸 공간이 없는걸 발견하고는 이렇게 블로그로 오게 됐다.
  
그르노블에 온지는 이제 한달이 넘었고, 수업을 시작한지는 벌써 3주가 넘었다.
처음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런지, 혼자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너무나 버거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활기차려고, 자신감 잃지 않으려고 나 자신을 꽉 잡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쓸쓸한 외로움과 고독함은 점점 날 엄습하기 시작했다. 

방이 굉장히 건조한 관계로 목감기에 걸리기 일쑤였고, 얼마 전부터는 귀 밑이 부어올라서 병원에 갔다가 화요일엔 초음파 검사 예약이 있고, 또 그 결과를 가지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나도 많다. 

내일은 그토록 기다렸던 등산이 있는 날인데 이렇게 늦게 자는데 내일 일어날 수나 있을까 의문이다.
흐아. 
서럽다 ..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1. 9. 18. 08:29
  학교 입학 등록이 금요일에 있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다시 입학등록을 위한 새로운 약속날짜가 잡혔다. 원인은 내 서류들이 프랑스 공식 번역가가 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공증만 받은것이기 때문이란다. 이 몇몇 서류들은 한국 번역업체에서 담당한것, 내가 프랑스친구한테 도움받은 것들이 섞여 있었고, 그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엔 파리에 있는 주불대한민국대사관에서 공증을 받은 나름 합법적인 서류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왜 굳이 프랑스에서 지정한 번역가들에 의해서 서류가 처리되어야하는건지 나는 이해가 할 수가 없었다. 
입학등록의 부푼 마음을 안고 금요일 아침 버스를 탔는데, 결국엔 복잡한 서류절차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날 정오엔, 은행계좌가 Tours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인 Grenoble의 은행으로 잘 옮겨졌는지 확인을 위한 은행약속이 잡혀있어서 학교엘 갔다가 아직 시간이 남아 근처 맥도날드에 맥플러리를 시켜 Déjeunette Finlandaise라는 (일명 핀란드식 점심) 맛난 빵(그때는 맛있지도 않았다)과 같이 점심을 대체하면서 프랑스 지정 공식 번역가들의 목록을 찾아봤다. 

"여기를 클릭"    

찾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나는 그르노블에 살고 있으니 파리까지는 너무나 멀어(비록 우편으로 처리하긴 하지만) 가까운 리옹에 살고 있는 최지안 번역가님에게 컨택을 시도해본다. 
여러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결국엔 핸드폰번호로 성공. 휴. 근데 서류 한 통당 30유로라니.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는데.

이사한지 이제 겨우 2주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나는 프린터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번역가님에게 보낼 몇몇 디플롬 인쇄를 해야할 일이 있어서 오늘 이 기회를 삼아 하나 장만해야지 하고 전자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그런데 거의 다다른 찰나, 학교안에 있는 복사실에서 인쇄했으면 금방 우편 부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 왜 그렇게 미련했을까.

그냥 이렇게 온거 프린터기 가격비교에 들어간다. 우선 Conforma, Fnac, Darty, Carrefour 이렇게 쭉 돌아봤지만 마음이 너무나 급해서 뭐가뭔지 머리에 들어올리가. 결국엔 집으로 가서 근처에 복사하는 곳이 있나 구글맵으로 찾아보았다. 버스를 또 타야했지만 근처 고등학교 안에 복사창구가 있는걸 확인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탔다. 고등학교를 지나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프랑스고등학교는 외부인들이 출입금지라는걸 내가 또 깜박하고 있었다. 그걸 내리기전에 재빠르게 인지하고는 그냥 그 버스를 타고 끝까지 다시 학교로 갔다. (다행히 학교 방향 버스였다)

복사카드를 구입하여 인쇄를 하고, 그 옆에 있는 우체국에 가서 드디어 서류를 부쳤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약간 마음이 안정됨을 느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이란 아주 희귀한 어떤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더라.
아까 저녁에 잘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삼성 리움 미술관을 건축한 Jean Nouvel과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 또한 건축분야의 전문가 중에 전문가. 그가 말하는 방식과, 말하는 내용과, 말하는 눈빛. 무언가가 남달랐다. 지금 다시 인터뷰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가 말 할때는 항상 얼굴에 생기가 돌며 자신의 신념을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하는데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열정이었다. 그 열정에서 전문가가 탄생하는것이리라. 얼마전에 파리에서 길을 걸어가는 중에 우연히 그가 건축한 l'institut du Monde d'Arabe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을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그 감탄이란. 실로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나는 무용가 Anne Teresa de Keersmeaker를 보고는 한마디로 반해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갸날픈 몸으로 자신만이 표현 할 수 있는 언어로 몸짓을 하고 있었다. 

Anne Teresa De Keersmaeker en 2011 par Michiel Hendryckx.     
"그녀의 작품(클릭)"

그녀의 나이 이제 쉰을 넘었다. 춤을 추기 시작한지 40년이 넘은 지금 또한 그녀는 끊임없이 춤을 추고 또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자신의 열정을 쉼없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나는 언제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춤 40년. 정말 존경스럽다.

전문가들은 항상 어디에서나 빛이 난다. 비록 얼굴이 못생기거나 옷을 잘 세련되게 입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남다른 포스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다. 나도 그런 전문가가 되고싶다는 열망이 생겨버렸다. 솔직히 얼마전까진 단순한 연구원이 되는것이 나의 목표라면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무언가 확고한 나의 신념이 생긴 순간이었다. 가슴이 쉴 새 없이 뛰고 무언가 할 일들이 많아지는 기분에 마음이 급해졌다.

9월 중순부터 시작될 나의 (아직은 평범한) 석사시작은 이러한 목표를 향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나의 철없던 그 수많은 방황 끝에 나는 바로 프랑스에서 노인학을 선택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도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훨씬 많이 힘들거라는 거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이런 서류 행정 일들로 스트레스가 여간 생겨나는게 아닌데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그것들이 내 머리 사방을 쑤시고 다닐지 가히 상상도 되지않는다.

어쨌든 이제 그 초석을 갈고 닦을 차례가 되었다.

Festina lente (급할수록 돌아가라)


Posted by Florenceciel
일기2011. 9. 17. 00:46
   날 충족시켜 줄 수 있는건 그 어디에도 없다.
 
 나의 또 다른 내가 힘들어함을 느낀다. '힘든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라고 되뇌어보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난 거짓으로라도 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착각한다.

 쉬운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에게 하는 첫 말은 "잘 지내?" 일텐데, 이 '잘 지낸다'라는건 아주 많은 조건을 요구한다. 
성한 이가 있고 최소한 먹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잘 먹을 수 있고, 최소한의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잘 잘수도 있으며, 위생적인 화장실이 있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가 있겠다. 
'우선'(이 윗 단계 욕구들의 밑바탕이 되기에), 이 기본적인 욕구중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결국엔 정신이 건강해질 수가 없는, 즉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항상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잘 지내는 과정에서 행복이 따라온다고 하지만 결과는 어쨌든 행복이다.) 

 가족의 품을 떠나 고향을 떠나, 조국을 떠나 산지 벌써 1년 반이 되어가는 이 즈음 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나는 당장이라도 버리고싶은 위기의 상황에 처한 중이다.
어떻게 보면 나의 기만에 따른 결과를 초래한 셈이라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항상 신중하자고 나 자신을 다그쳐보기도 하지만 이 어설픈 성격은 내 역마살과는 다르게 어디 가지도 않고 내 모든 몸뚱아리에 꼼짝않고 붙어있다. 이것에겐 좀 미안하지만(정이고 뭐고 없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떨쳐낼 수 있을까?

누가 나에게 어설프지 않을 수 있는 법을 알려줘요. 내가 충족 할 수 있도록.
Posted by Florenceciel